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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通選挙制度の場合

『대한민국사 1(한홍구의 역사이야기) 』より

韓洪九(ハン・ホング)先生の『大韓民国史』は、話題が豊富で興味深く読み進めることができます。

歴史を知ることで、隣の国の人々について理解が深まるように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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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된 근대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적어도 형식적으로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은 우리 민중이 정당한 투쟁을 거쳐 쟁취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48년부터 시행된 보통선거제도이다. 서구에서 보통선거권의 역사는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여성참정권의 경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18세기 말에 처음 시작한 프랑스의 메리쿠르는 '미친년'소리를 듣다가 정말로 미쳐버렸고,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말하다가 의정단상에 오르기 전에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여성참정권이 프랑스에서 1946년에야 보장된 것을 본다면 우리의 남녀평등 보통선거가 1948년에 실시된 것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 수 있다. 1952년에 실시되었던 지방자치제도도 이승만 정권이 국회를 약화시키고 지방 토호들에게 족보에 기록할 벼슬자리를 주어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p.22


移植された近代化をたどる過程で少なくとも形式的には相当な進歩があったことは明らかだ。しかし、このような成果はわれわれ民衆が正当な闘いを経て勝ち取ったものではないことが多かった。その代表的なものが1948年から実施された普通選挙制度である。西欧での普通選挙権の歴史は、それこそ血塗られた歴史だった。女性参政権の場合、これを獲得すための運動を18世紀末に最初に取り組んだフランスのマリークールは「狂った女」と言われたが本当に狂ってしまい、グーズは「女性が断頭台に上がる権利があるなら議場壇に上る権利もある」と言ったが、議場壇に上る前に断頭台に上らねばならなかった。女性参政権がフランスで1946年になって保障されたのをみると、わが国の男女平等普通選挙が1948年に実施されたのはなんとも早いことがわかる。1952年実施された地方自治制度も、李承晩(イ・スンマン)政権が国会を弱体化させ、地方の有力者たちに家系図に記録する官職を与え彼らを抱き込むために実施したもので、草の根民主主義とは程遠いもの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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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13-12-11 15:04 | 韓国 | Comments(0)

共に生きる社会とは

『대한민국사 1(한홍구의 역사이야기) 』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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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사회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나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어딘가 부족하고 힘없는 사람들, 소수자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왜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공자님 말씀이다. 인류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려는 것은 실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수 없고, 또 쓸어버릴 때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살아가려 하게 된 것이다. p. 140


共に生きる社会とは、自分が好きな人々や自分に盲目的に服従する人々と共に生き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共に生きる社会とは、嫌らいで憎しみを感じる人々、どこか不十分で力のない人々や少数者たちと共に生きるということだ。何ゆえに共に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か。弱者や少数者の人権を尊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は孔子の言葉である。人類が共に生きる社会を作ろうとするのは、実は気に入らないことをすべて排除することはできず、また排除する時にはとてつもない代価を支払わねばならないことを学んだからである。だから、気に入らなくても我慢して生きていこうとす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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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13-12-01 12:14 | 韓国 | Comments(2)

「何如歌」と「丹心歌」

このところ、「朝鮮」建国のあたりのことを少しお勉強中012.gif



하여가(何如歌)      이방원(李芳遠イ・バンウォン)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ㄴ들 だとしても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리 反語的に であろうかしようか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을 누리리라  *리라 推量 意思

こうだとしてもいいしああだとしてもいい
マンス山の葛のつるがからんだとしてもいいではないか
我らもこのようにからまり百年を享受しよう



단심가
(丹心歌)        정몽주(鄭夢周チョン・モンジュ)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랴 反語的疑問 であろうか と言おうか

この身が死んで死に 百度も死に繰り返して
白骨が土に返り魂もあってもなくても
あなたに向かう一途な心はなくなることがあろうか



정몽주는 고려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 나라를 없애버리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신하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으면 고려라는 나라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고려의 폐단을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건설해 극복하고자 했다.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에서 이방원은 어진 중신인 정몽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욕심에 이성계를 왕으로 세워 조선을 개국해 편안하게 살자는 뜻의 ‘하여가’를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본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고려 왕족을 향한 절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의 ‘단심가’를 읊어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단심가는 조선의 개국과정에서 반대파의 주장을 대변했으나, 개국 후 신하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이 됐다.(경향신문 '생각통통 초등논술'에서)

チョン・モンジュは高麗に多くの問題点があるのを知っていたが、だからといって一つの国を亡ぼし新しい国を建設することは臣下としてすべきことではないと考えた。問題があるなら高麗という国の中で解決すべきであると考えた。しかし、イ・ソンゲと彼を支持する人々は高麗の弊害を「朝鮮」という新しい国を建設して克服しようとした。朝鮮を建国する過程でイ・バンウォンは賢い重臣のチョン・モンジュを味方に引き入れたい思いで、イ・ソンゲを王に立て朝鮮を建国し平安に暮らそうという意味の「何如歌」を作り彼の腹を探った。しかし、チョン・モンジュは高麗の王族を思う忠誠心を曲げはしないという意味の「丹心歌」を詠じて自分の意思を伝えた。「丹心歌」は朝鮮の建国過程で反対派の主張を代弁したが、建国後は臣下の忠誠心を示す代表的な作品となった。



イ・バンウォンはドラマ「根の深い木」の初めの方に出てきたセジョン大王のお父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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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詩のやり取りの後、イ・バンウォンはチョン・モンジュを殺してしまいます。
殺された場所、北朝鮮の開城(개성ケソン)にある善竹橋(선죽교ソンチュクキョ)には今でもチョン・モンジュの血の跡が残っているとガイドの説明があるそうです・・・真偽のほどは如何0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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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13-10-24 16:50 | 韓国の言葉・学習 | Comments(0)

『不屈のハンギョレ新聞』

久々の重めの読書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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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屈のハンギョレ新聞 ~韓国市民が支えた言論民主化20年~』
<희망으로 가는 길 : 한겨레 20년의 역사>
ハンギョレ新聞社・編/川瀬俊治、森 類臣・訳

【出版社新刊案内】

韓国の民主化に深く関係するハンギョレ新聞。市民を株主として誕生したハンギョレが権力の圧力に対抗した苦難と希望の歩みを紹介。現在・将来に対するメディアの責務にも言及。韓国と日本の言論状況を比較した訳者の解説付。


注文していたのが今日着いたところです。
韓国の現代史を自分の年齢と重ね合わせて興味深く読んでます。
細かい活字が424頁は目につらいですが、頭を活性化させるのに役立ちそうです~05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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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12-03-31 18:53 | 本との出会い | Comments(2)

『モンシル姉さん』

近所の図書館で借りてきました。
厳しく救いようの無い現実が次々と押し寄せても前向きに生きるモンシルの姿に励まされ
たちまち読み終えることができました。
夏休みの読書にいか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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モンシル姉さん(몽실 언니 )
権正生(권정생 クォン・ジョンセン)著、絵本『강아지 똥』の著者
卞記子(변기자 ピョン・キジャ)訳

~訳本の帯より~
素直に、まっすぐに、へこたれずに生きれば、
悲しみはそのぶんだけ光に変わる。
妹を背負って生きる幼いモンシル姉さんが、
わたしたちに教えてくれる「希望不変」の法則。
韓国でベストセラーとなった不朽の名作。


해방 직후부터 50년대 까지를 배경으로 삶이 피폐해진 생활 속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몽실이와 동생 난남이가 겪는 세상살이를 담은 장편동화. 아버지와 엄마, 새아버지와 새엄마, 인민군 언니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성장해 가는 몽실이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또한 절름발이 몽실이가 겪는 삶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풍속을 잘 드러냈다.

解放直後から50年代までを背景に、生きることに疲弊した生活の中でも善良な心を失わないモンシルと妹ナンナミが経験した暮らしを収めた長編童話。アボジ(父)とオンマ(母)、新しいアボジと新しいオンマ、人民軍のお姉さんたちとの出会いと別れを通して成長していくモンシルの姿を淡々と描いた。また、不自由な足のモンシルが経験した人生を通して当時の状況と風俗をよく表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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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11-07-31 17:28 | 本との出会い | Comments(4)

「寒さと風に対決した李珥」

d0041400_1553582.jpg去年の夏、カンヌンに行っった時、栗谷・李珥の生家烏竹軒(오죽헌)に行きました。そんなこともあり雑誌「좋은생각」に載っている文章に目がとまりました。いわゆる歴史に残る彼については全くといっていいほど知らないので、どこまで正しく理解できたかは疑問ですが、興味深く読みました。


  추위와 바람에 맞선 이이     역사 저술가:이한
  寒さと風に対決した李珥       歴史著述家:イ・ハン

율곡 이이는 어머니의 사랑과 영재 교육을 받고 자란 수재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진정한 스승은 그 자신이었다.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13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재혼과 새어머니의 구박으로 방황하다 절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 속세로 나와 독학으로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栗谷・李珥は母の愛と英才教育を受けて育った秀才というイメージがあるが、実は本当の師は彼自身だった。4男3女の3番目に生まれた彼は13歳のとき母を亡くし、父の再婚と新しい母のいじめから逃れてさまよった末、寺に入った。そして1年後に俗世に出て独学で科挙に9回も首席で合格するという大記録を打ち立てた。

하지만 선비들은 이이를 존경하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혹은 죽은 뒤에도 괴롭혔다. 시샘도 있었지만, 그가 어떤 학파에도 소속되지 않아 연줄이 없던 탓도 있었다. 그러니 관직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새로 임관하면 집안 살림을 거덜 내서라도 한턱 내는 풍습이 있었고, 상관이 신입 버릇을 들인다며 모욕을 주는 일도 공공연했다. 스승도 동기도 없고, 어린 나이에 장원이 된 이이는 괴롭히기 좋은 상대였다. 결국 이이는 벼슬을 그만두고 관직생활의 폐해를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 역사서에 기록된 게 이 정도니, 실제 겪은 고통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しかし、ソンビたちは李珥を尊敬するのはおろか死ぬまで或いは死んでからもいじめたのだった。嫉妬もあったが、彼がどんな学派にも所属せず縁故も無い所為だった。そして官職生活も平穏ではなかった。当時は新たに任官すると家の財産をつぶしてでも馳走する風習があり、上官は新入りに礼儀を教えるといって侮辱を与えことは公然のことだった。師も無く同期も無く、若くして科挙に首席で合格した李珥はいじめるのに最適の対象だった。結局、李珥は官職を辞し官職生活の弊害を指摘する上書を上げた。歴史書に記録されたのがこの程度だとすると、実際に経験した苦痛といったら到底言葉にできないほどだったろう。

이이는 학자로 이름을 날린 뒤에도, 벼슬자리에 올랐다가 이를 버리고 시골에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저 괴롭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리학자이기 전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경세가인 그는 몇 번이고 조정에서 선조에게 간언하고, 조선을 중흥시키기 위한 개혁을 주장했다. 흔히 이이 하면 십만양병설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가 계획한 사회개혁은 아주 다양했다. 시무6조에서 개혁 방법을 제시하는 한편, 만언봉사를 통해 부패를 시정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이로써 이 나라를 더 좋게 바꿀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리라.

李珥は学者として名を上げた後も、官位に上っても、それを捨てて田舎に帰ることを繰り返した。ただいじめのためだけではなかった。性理学(朱子学)者である前に少しでも良い世の中を作ろうとする経世家である彼は、幾度も朝廷から宣祖(朝鮮王朝14代の王)に諫言して朝鮮を中興させるために改革を主張した。よく李珥といえば「十萬養兵說」だけを思い浮かべるが、実は彼が計画した社会改革はたいへん多様だった。「時務六條」で改革法を提示する一方、「萬言封事」を通して腐敗を是正することを主張した。彼はこれによってこの国をよりよく変えることができると信じて疑わなかったのだろう。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애써 이이를 편들어 준 사람도 있었고, 그가 관직에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란 이들도 있었지만,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선조는 이이에게 자신 곁을 떠나지 말고 오래 있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작 이이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しかし現実は惨憺たるものだった。李珥に味方をして力添えをする人もいて、彼が官職復帰することを切望する人もいたが、彼をねたむ人ははるかに多かった。宣祖は李珥に自分のそばを離れずにずっと居てくれるよう頼んだが、実際、李珥は自分の力不足だという理由で拒絶した。

그 뒤 이이는49세의 나이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본다면 이이의 인생은 한없이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괴롭힘을 당했을 때, 포기하고 주저앉았더라면 우리가 아는 율곡 이이는 없었을 것이다. 사나운 추위와 바람에도 다시 일어나 나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설령 뜻하지 않은 결과가 있다 해도 말이다.

その後、李珥は49才の年にわびしくこの世を去った。このように見ると李珥の人生は限りなく孤独で辛かった。しかし母が亡くなった時、いじめに合った時、あきらめ放棄していたら私たちが知る栗谷・李珥は無かっただろう。厳しい寒さと風にも再び立ち上がり前進しただけでも尊敬に値する。たとえ、予想だにしない結果であったとしてものこと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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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09-07-26 15:09 | 韓国の言葉・学習 | Comments(2)

「厳しくも温かい王様」

ドラマで正祖(朝鮮時代22代の王)を知りました。
数年前、水原(수원)に行った時、この都が作られた経緯は解説で知りましたが、それが正祖であり父のサド世子に関することであると、ドラマやいろいろな文章に出会い理解が深まりました。
そんなこともあり、こんな文章が目につき、興味深く読みました。


 매섭고도 따뜻했던 임금   이한:역사저술가

 厳しくも温かい王様     イ・ハン:歴史著述家

얼마 전 정조의 비밀 편지가 공개되었다. 그의 최대 정적으로 알려진 심환지와 정치적인 협약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란다. 여러 서적과 드라마 덕에 온화한 이미지가 강해진 탓도 있을 듯하다. 일각에서는 정조에게 있던 성군의 이미지가 무너졌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少し前、正祖の秘密の手紙が公開された。彼の最大の政敵として知られている沈煥之と政治的協約を結んだという事実が明らかになり、多くの人を驚かせた。いろいろな書籍やドラマのおかげで温和な印象が強くなっていたせいもあるようだ。一部では正祖の聖君のイメージが崩れたという言葉も聞かれるようだ。

잘 알려졌다시피 정조의 과거는 암울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을 보았고, 또 작은 외조부가 정적이 되기도 했다. 장성한 이후로도 많은 정치적인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정조가 좋은 왕이 될 수 있던 것은, 여러 울분을 공부로 푼 덕이리라.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굉장해서 놀거나 자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고, 180여 권에 달하는 문집을 남기기까지 했다.

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正祖の過去は陰鬱だった。幼いころに父のサド世子が悲劇的な死に合ったことを見たこともあり、また大叔父が政敵でもあった。長じた後にも政治的圧迫に苦しめられた。そんな正祖がすぐれた王になることができたのは、さまざまな鬱憤を勉強で晴らしたおかげだろう。勉強についての彼の熱情は大変なもので、遊んだり寝たりするよりも本を読むことが好きで、180余巻に達する文集を残すまでだった。

그러다 보니 정조는 공부한 사람 특유의 고집이 있었다. 치세 동안에 정조는 왕의 권위를 내세우며 신하들을 윽박지르는 대신, 그들과 집요하게 토론을 벌였다.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정조에게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신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지나쳐서, 너무 꼼꼼하게 따지고 늘어질 때는 채제공이 만류했다. 또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빈정거리거나다를 폭발시키는 말을 쏟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조는 자신과 함께할 인재를 갈구헌다. 그래서 젊은 *초계문신들을 키우고 돌보는 데 열성을 쏟았다. 신하들이 그들을 편애한다며 불만의 소리를 높일 정도였다. 그런데 인재를 아끼는 것이 무조건적인 애정을 뜻하지는 않았다. 만약 엇나간다면,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라고 해도 매섭게 야단쳤다.

そうしてみると、正祖には勉強を好む人特有の頑固さがあった。治世の間、正祖は王の権威を打ちたてて臣下たちを抑圧するかわりに、彼らと執拗に討論をした。該博な知識と堅固な論理で武装した正祖にまともに反駁できる臣下は多くなかった。しかし時にはその度が過ぎて、いちいち問い詰めて食い下がる時には蔡濟恭が引きとめた。また、ある時には露骨に皮肉ったり、怒りを爆発させる言葉をなげつけたりした。しかし、それ以上に正祖は自分とともにことをなす人材を渇望した。それで若い*抄啓文臣たちを育て世話をするのに熱心だった。臣下たちが彼らを偏愛すると言って不満の声が高くなるほどだった。ところが人材を大切にするというのは無条件の愛情を意味するわけではなかった。もしも道にそれることがあると自分が大切に思う人であっても厳しくしかりつけた。   

당시 조선에는 서학이 전래되면서 소설이 유행했는데 초계문신들도 이를 배웠다. 하지만 주자학의 나라에서 서학은 이단이었고, 이 사실을 안 정조는 크게 분노했다. 몇 번이나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섭섭함을 토로하고, 벼슬을 빼앗거나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런데 이런 처벌은 젊은이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그들을 질투하는 신하들로부터 지켜 주는 보호벽이 되기도 했다. "이미 처벌은 끝났다."라며 현란한 언사와 견고한 논리로 그들을 향한 비난을 막아섰다. 그렇게 지켜 낸 이들이 정약용이나 이가환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만약 정조가 마냥 착하기만 했다면, 어떻게 그들을 지켜 낼 수 있었겠는가. 그는 때로 매섭게 혼을 낼지언정, 정말 어려울 때 신하들을 지켜 주는 임금이었다.

当時、朝鮮には西学が伝来して小説が流行したが、抄啓文臣たちもそれを学んだ。しかし朱子学の国に西学は異端であり、この事実を知った正祖はひどく怒った。何度も、どうしてこんなことがあるのかと残念がり、官職を奪ったり反省文を書かせたりした。しかしこんな処罰は若者たちの過ちを正すことはもちろんだが、彼らを嫉妬する臣下たちから守ってやる保護壁となったりもした。「もう処罰は終わった。」という、目立つ言葉と堅固な論理で彼らに向かう非難を防いだ。このように守り通した人々が丁若鏞や李家煥のような私たちにも馴染んだ名前だ。もしも正祖がただ善良なだけだったらどうして彼らを守り通すことができただろうか。彼は時には厳しく懲らしめることはあっても本当に困難な時には臣下たちを守ってやる王様だった。

―좋은생각 2009.04 ―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文臣)들을 칭하는 용어이다.

 抄啓文臣は朝鮮時代後期、奎章閣で特別な教育と研究課程を踏んだ文臣たちを称する用語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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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09-06-20 22:26 | 韓国の言葉・学習 | Comments(2)

「ソンビはどのように自己管理をしたか?」

先週の土曜日、KNTVでドラマ「明成皇后(명성황후)」が最終回を迎えました。そんな時、この文章に出会い、興味深く読みました。史劇ドラマをあれこれ見るうちに、韓国の歴史を知ることになり楽しくなってきています(^^*)
ソンビとは、辞書によると、学識が高く言動・礼節が正しく義理・原則を守り官職・財産をむさぼらぬ人格の高潔な人、士、人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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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어떻게 자기관리를 했을까?
   -이하림 기자
ソンビはどのように自己管理をしたか?   -イ・ハリ記者

햇살 좋은 날, 서울 종로에 있는 운현궁으로 나들이를 갔다. *고종이 열두 살 때까지 자란 곳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머물던 운현궁. 부유한 그들이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방 안을 살펴본 나는 다소 놀랐다. 어른 셋이 겨우 누울 작은 방에 가구라고는 수납장과 책상, 병풍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日差しの心地よい日、ソウルのチョンノにあるウニョン宮にぶらりと出かけた。高宗が12才まで育ったところであり、興宣大院君イ・ハウンが住んだウニョン宮。裕福な彼らがどれほど華やかな生活をしていたか知りたかった。しかし、部屋の中をよく見た私は少々驚いた。大人が3人やっと横になれるくらいの小さい部屋で家具といえば収納箪笥と机、それに屏風で全部だったからだ。
*고종:朝鮮時代26代の王、后は明成皇后

비록 이하응은 세상일에 초연하지는 못했을지언정 단출한 살림살이가 보여 주듯, 고고한 선비로서 검약한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엄격히 관리했다. 장식 없이 나뭇결 무늬만 살린 흑갈색 목가구도 검소한 기풍을 드러낸다. 숙종 때 나온 ‘산림경제’에는 가구에 붉은 칠을 하면 안 되고, 평상도 고목 둥치로 만들되 새 모양조차 새기지 말라고 쓰여 있다. 선비는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송시열의 종가에서는 도끼 자국이 남은 통나무를 그대로 썼다.

イ・ハウンは、たとえ世事に超然としていることはできないとしても、こじんまりした暮らし向きが見せてくれるように、孤高のソンビとして倹約した生活をするために自分自身を厳しく管理した。飾りの無い木目模様だけを活かした黒褐色の木の家具も質素な気風をあらわにしている。*肅宗の時出た『山林経済』には家具に赤い漆を塗ってはならず、寝台も古木の根元で作り、鳥の模様すら刻んではならないと書いてある。ソンビは民衆の模範とならねばならないからである。だからか宋時烈の宗家(本家)では斧の跡が残った丸木をそのまま使った。
*肅宗:朝鮮時代19代の王

자기관리는 검약한 생활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선비는 잠자는 것도 여름에는 4시간,
겨울에는 6시간을 넘지 않았다. 새벽 2~4시에 일어나 독서와 사색은 물론, 자녀에게 글을 가르쳤다. 오전 10시 이후에는 손님 접대를 하고 일꾼의 일을 살폈다. 저녁 8~10시면 일기나 장부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늦잠을 삼가고, 날마다 할 일을 규칙적으로 하며 나태해지지 않도록 내면을 가다듬은 것이다.

自己管理は倹約した生活だけではなかった。ソンビは眠ることも、夏には4時間、冬には6時間を越えなかった。夜明け前の2~4時には起きて読書や思索はもちろん、子女に文を教えた。午前10時以降にはお客を接待し下働きの仕事を点検した。夜8~10時には日記や帳簿をつけ寝床に入った。朝寝を慎み、毎日することを規則的に行い、怠惰にならぬよう内面を整えるのであった。

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顯顯)’이라 하여 책을 100번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 소현세자의 《동궁일기》에도 새로 배운 것은 60번, 전에 배운 것은 40번씩 매일 읽으라는 학사의 권고가 적혀 있다. 소리 내어 여러 번 읽다 보면 글의 기운이 읽는 이의 마음으로 스며든다고 여겼다. 한편 정약용은 읽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부분 밑에 자기생각은 물론 다른 책에서 본 그와 관련된 내용까지 덧붙여 썼다. 그렇게 중요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목민심서》와《‘흠흠신서》이다.

また、「読書百篇意自ずからあらわる」といい、本を100回読むことは基本だった。*昭顯世子の『東宮日記』にも新たに学ぶことは60回、以前に学んだことは40回ずつ毎日読むようにという学士の勧めが記されている。声に出して何度も読んでみると文字の気運が読む人の心に染み込むと思われた。一方、丁若鏞は読むだけでは足りず重要なところの下に自分の考えはもちろん他の本で見た関連のある内容まで、一緒に書いた。そのように重要な内容を整理し編んだ本が『牧民心書』と『欽欽新書』である。
*昭顯世子:朝鮮時代16代王仁祖の嫡男。

선비는 책에 담긴 선인의 지혜를 배우며 자신이 하려는 바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성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활쏘기를 하며 몸을 단련하는데도 열심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괜한 욕심이 앞설 때는 고요한 산을 오르며 가슴속의 티끌을 털어 냈다.

ソンビは本に込められた先人の知恵を学び自分がしようとすることが道理に外れないように、聖人になるように努力した。それと同時に弓術もし体を鍛錬するのにも熱心だった。理想を実現するためには何よりも体が健康で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だ。また、無駄な欲が先立つときは静かな山に登り胸のうちの埃をはらい落とした。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 탓에 나태해지기 쉬운 요즘, 외면과 내면까지 관리하던 선비의 삶을 마음에 담아 본다.

豊かで便利な生活の所為で怠惰に陥りやすい近頃、外面と内面まで管理したソンビの生活を心に思い描いてみた。

-좋은생각 2009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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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09-03-30 22:46 | 韓国の言葉・学習 | Comments(4)

学生たちよ、一度くらいは奎章閣を見回し給え

ソウル大奎章閣の신병주(シン・ビョンジュ)氏が、奎章閣(규장각)について書いたコラムがありました。奎章閣は、朝鮮時代の王室図書館、22代の正祖が即位した1776年に設置した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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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여, 한 번쯤은 규장각을 둘러보라
 
  学生たちよ、一度くらいは奎章閣を見回し給え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전통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서적들과 고지도, 책판,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의궤', '대동여지도' 등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고서들이 규장각의 대표작이다.

筆者が勤務しているソウル大学奎章閣は、伝統時代を代表する数多くの書籍と古地図、本の版、古文書が保管されている。「朝鮮王朝実録」と「承政院日記」、「儀軌」、「大東輿地図」など、名前くらいは聞いたことのある古書が奎章閣の代表作だ。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동정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 기록이 중심이지만 조선에 들어온 코끼리 이야기, '대장금'의 실존인물 '장금' 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의궤'에는 결혼식, 장례식 등 왕실의 주요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서 전통시대 생활상을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접하게 한다. 전체 22첩을 모으면 세로 6.7m, 가로 3.3m의 방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대동여지도'를 보면 김정호를 왜 최고의 지도학자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지봉유설'이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의 백과사전에는 우리 것을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흡수하려는 지적인 역량들이 축적되어 있다.

「朝鮮王朝実録」は王の動静を中心とした政治史の記録が中心であるが、朝鮮にやって来た象の話、「大長今(デチャングム)」の実在した人物「チャングム」など興味津々な内容も含まれている。「儀軌」には、結婚式、葬式など王室の主な行事の場面を収めた絵が収録されていて、伝統時代の生活の様子に立体的に生き生きと接することができる。全部で22帳を集めると、縦6.7m、横3.3mの膨大な姿をあらわにする「大東輿地図」を見ると、金正浩を何故、最高の地図学者と呼ぶのかがわかる。「芝峰類説」や「五州衍文長箋散稿」などの百科事典には、我々のものを根本として外国の文物を吸収しようとした知識人の力量が蓄積されている。

선조들이 남겨 준 기록유산들이 이처럼 다양하게 남아있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큰 행운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개혁을 강조할 때 '법고창신(옛 것을 모범 삼아 새 것을 창조함)'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역사와 전통의 재발견은 문화민족으로서의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끈이기도 하다.

先祖たちが残してくれた記録遺産がこのように多様に残っていることは、後代を生きていく我々には大きな幸運だ。正祖は奎章閣を建て改革を強調する時、「法古創新(昔のものを模範とみなし新しいものを創造すること)」の精神を忘れなかった。歴史と伝統の再発見は文化民族としての我々を結びつけてくれる紐でもあるのだ。

'영어 공교육'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영어를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정조 시대의 규장각과 우리의 언어와 역사를 찾기 위해 헌신하던 일제시대의 선조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국제화 시대 영어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바탕에 둔 최소한의 균형 감각은 갖추어야 할 것이다.

「英語公教育」が話題に浮かぶとき、英語ができなければすべてを失うことのように感じられる今、正祖の時代の奎章閣と我々の言語と歴史を取り戻すために献身した日帝時代の先祖たちが思い浮かぶのは何故だろうか。国際化時代の英語の重要性はとやかく言う必要が無い。しかし、我々の言語と歴史、文化を根本においた最小限のバランス感覚は備えるべき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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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08-05-17 18:19 | 新聞 | Comments(0)

『朝鮮語を考える』

한 국민이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된다고 해도 자기 나라 말을 잊지 않고 간직하면 그 감옥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ある民族が他国の奴隷となっても、自国語を忘れずに保っているかぎりは、その牢獄の鍵を握っているようなものだ。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중에서―
―アルフォンス・ドーデー「最後の授業」より―

地元の図書館でたまたま出会った本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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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語を考える』塚本勲著 白帝社2001年5月刊


著者は、収録語数23万、2800ページを超える世界最大の朝鮮語辞典だという『朝鮮語大辞典』全3巻の編者です。『朝鮮語大辞典』は近所の図書館で「禁帯出」扱いになっていて、手持ちの辞書で見当たらない時に何度か開いて見たことがありました。その辞書が誕生するにあたり、妨害もふくめ壮絶なドラマがあったことをこの本『朝鮮語を考える』で知りました。
四十数年前、わたしはアフリカの言葉を学ぶようにして、朝鮮語を学んだ。「アフリカの言葉を学ぶように」というのは、辞書なし、参考書なし、教師なし、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にまだ朝鮮半島にいくこともできなかった。
ただひとつ残された方法として、京都朝鮮高校の講師をしながら、在日朝鮮人から直接ナマの朝鮮語を学ぶことで修得していったといいます。

朝鮮語を学ぼうとして朝鮮語辞典を探し歩き、全く出版されていないことを知り不思議な気持ちになる。不思議な気持ちは、だんだん、「なぜ出版されないのか」と好奇心に変わり、好奇心は少しずつ、長い時間をかけて怒りに変わっていったといいます。朝鮮民族が独立して11年である1956年のことです。上にあげた「最後の授業」の一節は、この本の中で何度か引かれています。苦しい辞書作りの中で「牢獄の鍵を握る」ために命をおとした人を思ったとあります。

1961年に朝鮮学科があったのは天理大学のみ、朝鮮語の講義が一・二コマあったのが、京都大学、大阪外国語大学、早稲田大学、東京教育大学だけという状況だったということなど、今から考えると信じられない現実にあったことがわかります。前書きで、「近頃韓国に興味をもつようになった人々に読んでもらいたいと思った」と記しています。

戦後の日本国内での朝鮮語の位置、在日朝鮮人のおかれた状況、日本と朝鮮半島にかかわる差別と親善について、これらに関心のある人には興味深いことと思います。興味をもたれた方は、近くの図書館で探してみては如何でしょうか。

こんなエピソード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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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syoujiten | 2007-02-25 22:41 | 本との出会い | Comments(4)


「いさのハングル小辞典」をリニューアル。韓国と韓国語が好きな人と交流したいと願っています。2014年4月の韓国語能力検定試験で6級合格しました(^^*)


by い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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